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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 리베로 임명옥 인터뷰
여자배구 한국도로공사 리베로 임명옥이 지난해 12월 28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1-2022 V리그 3라운드 KGC인삼공사전에서 상대 공격을 수비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배구에서 리시브는 상대 서브 공격을, 디그는 스파이크·백어택 등 서브를 제외한 공격을 받아내는 수비다. 공격의 구질, 각도 등이 미묘하게 달라 리시브와 디그를 모두 잘하는 선수는 드물다.
한국도로공사 리베로 임명옥(36)은 그 드문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번 시즌 리시브효율 55.24%와 디그 세트당 평균 5.897개를 기록, 3시즌 연속 리시브·디그·수비종합 1위를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임명옥은 22일 국민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기록 욕심이 좀 났는데 목표를 이뤄서 뿌듯해요. 언젠가 깨지겠지만 좀 천천히 깨졌으면 좋겠네요”라며 웃었다.
한 해설위원은 “다른 선수였다면 ‘나이스 수비’라고 할 플레이도 임명옥이 하면 잘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늘 잘해서 그렇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꾸준히 활약했지만, 남모를 고민도 있었다.
2020년 코보컵 때였다. 2019-2020 시즌 첫 리시브·디그 1위를 기록한 뒤다. 슬럼프도, 기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사실 배구를 그만둘까 생각했어요. 마음이 잘 안 잡혔어요. 스트레스받으며 살지 말고 편하게 살까, 다른 걸 해도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했어요.”
그의 속앓이를 언니가 알아챘다. 두 살 터울 언니는 중학생 때 공격수였던 임명옥에게 공을 토스해준 세터였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임명옥의 정신적 버팀목이다. 언니는 “니 (경기중) 파이팅하는 것만 봐도 안다. 요즘 배구에 애정이 없다. 정신 차려라”고 했다. 말다툼이 이어졌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왜 우냐”는 물음에 임명옥은 “내 마음을 들켜서”라고 했다.
“언니가 마지막에 그랬어요. ‘엄마 살아계실 때 제일 좋아하던 게 니 운동하는 거였다. 발인 끝내놓고 결승(2017-2018 챔피언결정전) 뛰러 갔을 때 그 마음은 잊지 마라.’ 그때 정신이 들었어요.”
배구와 가족은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초등학교 클럽활동으로 매주 한 번 배구를 했는데 너무 잘했다.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경남 남해에 살던 임명옥은 가족과 떨어지기 싫어 마산의 학교로 전학하길 꺼렸다. “아빠는 형편이 어려워 축구를 하지 못하셨는데 딸한테 운동 제안이 오니 좋아하셨죠. ‘아빠는 했으면 좋겠나 보다’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배구를 지속하게 한 이유다. 20살 때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어머니가 생업 전선에 나섰다. 대중교통편이 나빠서 차로 40분 거리를 걸어 다니며 운전면허를 땄고 마늘공장에서 일하다 손에 마늘물이 들거나 상처가 나곤 했다. “성공하고 싶었어요. 연봉이 오르면 엄마를 더 도울 수 있을 거니까.” 어머니는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절 모르는 사람한테도 ‘얘 누군지 아냐’고 자랑했어요.”
지난 19일은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4년 전 어머니 장례 후 임명옥은 곧장 팀에 복귀해 구단의 첫 통합우승에 일조했다. “(기일이) 딱 봄 배구 시기잖아요. 이맘때면 더 힘내서 봄 배구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번 시즌은 코로나19로 리그가 조기 종료됐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실감이 안 났는데, 아침에 숙소에 안 가니 허무함이 몰려왔어요.” 그는 이번 시즌 주장을 맡아 팀을 2위로 이끌었다. “애들끼리 ‘(명)옥 언니 있으니까 이렇게 하자’, 감독님도 ‘명옥이 있는 코스는 비워두고 블로킹하자’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그때마다 ‘나를 많이 믿어주는구나, 그러니까 더 잘하자’ 다짐해요.”
도로공사는 ‘노장’ ‘베테랑’ 등 수식어가 곧잘 붙는다. 임명옥 정대영 배유나 등 선배 그룹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는 그리 달갑지 않다고 했다. “31살 때부터 노장이란 말을 들었어요. 체력부담은 다른 팀도 마찬가지인데 저희만 그런 얘기가 많아서 억울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웃음)”
몸 상태는 이전보다 좋다고 했다. “사람들은 작년에 더 잘했다고 하는데 저는 몸도 자신감도 올해가 더 좋다고 느껴요.” 임명옥은 ‘꾸준히 리시브 잘한 선수’로 기억되길 바랐다. 그는 리시브정확 5000개를 1호로 달성했다. 현재 5497개로 역대 1위다. “리시브 하면 임명옥, 임명옥 하면 리시브 이렇게요. 은퇴 후에도 팬들이 ‘리시브는 임명옥이지’ 얘기하면 좋겠어요.”
기사제공 국민일보
권중혁 기자(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