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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 인터뷰 여자배구 이윤정
실업팀 5년 뛰다 프로 진출 펄펄
도로공사 첫 12연승 대기록 선봉
“도전해야 후회 안 남아
고민중인 분들, 부딪혀보세요”한국도로공사 이윤정이 2일 경기 수원시 팔달문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실업팀 수원시청에서 활약하다가 뒤늦게 프로 무대에 도전한 그는 2021∼2022시즌 좋은 활약을 펼치며 V리그 여자부 신인상을 받았다. 수원/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실업팀 5년 차 선수가 어느 날 프로팀 입단 제의를 받는다. 고심 끝에 프로 무대 도전을 결정한 그는 첫 선발 경기부터 폭발적 활약으로 부진에 빠진 팀을 구한다. 기세를 탄 팀은 파죽지세로 연승을 달리고, 구단 역사상 첫 12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운다. ‘승리 요정’이 된 그는 그해 리그 최고의 샛별로 떠오른다. 올 시즌 V리그 여자부 신인상을 받은 세터 이윤정(25·한국도로공사)의 이야기다.
한국도로공사 이윤정. KOVO 제공
이윤정이 달려온 1년은, 두려움을 넘어 꿈을 향해 나아간 시간이었다. 운동선수로서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20대 중반. “이미 자리를 잡았고, 동료들과 정이 들었던 팀”을 떠나는 건 그야말로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일이었다. 더욱이 이윤정은 이미 고교 졸업 때 한 차례 드래프트 도전을 포기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윤정은 두번째 갈림길에서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택했고, 신인상을 받으며 값진 결실을 얻었다.
그 길이 내내 평탄했던 건 아니다. 프로 무대로 옮기며 관심이 늘어난 만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악성 메시지도 날아온다. 그가 자신이 나온 영상 등에 달린 댓글을 보지 않는 이유다. 서브 전에 ‘꾸벅’ 인사를 하는 특이한 루틴 때문에 ‘꾸벅좌’, ‘유교 세터’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지만, 부정적인 몇몇 팬들의 의견에 어린 시절부터 해온 루틴을 바꾸려고 시도할 정도로 신경을 쓴 적이 있다.
이윤정이 서브를 앞두고 인사를 하고 있다. KOVO 제공
늦은 프로 데뷔에 어려움은 있지만, 이윤정은 한 발자국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은 “아직 프로 무대 경험이 적어 자신감이 떨어져 보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이에 비해 당찬 면이 있다”고 했다. 이윤정은 “자신감이 떨어질 때면 혼자 많이 고민하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악성 메시지에 대해서도 “처음엔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무시하려고 한다”라며 “루틴도 바꾸려다 보니 서브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대로 하고 있다”고 했다.
평소 “힘든 일이 있어도 좀처럼 주변 사람에겐 말하지 않는다”는 이윤정은 주로 영화와 책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이윤정이 최근 감명 깊게 봤다는 영화 <싱스트리트> 속 주인공들은 온갖 어려움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린다. <아몬드>,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같은 성장기를 담은 책에서도 그는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윤정과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 김종민 감독은 실업팀에서 활약하던 이윤정의 재능을 보고 프로 데뷔를 제안했다. KOVO 제공
이번 시즌 올스타전에 신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참가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건, 이윤정의 이런 성장 드라마 때문이다. 이윤정이 영화와 책 속 주인공에게서 현실과 맞부딪히는 자신을 찾았듯, 팬들은 이윤정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다. ‘늦깎이’ 프로 신입생은 단순히 실업팀 선수도 프로에서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넘어 고된 현실에서도 별을 찾아가는 모든 이들의 용기가 되고 있다.
이윤정은 자신처럼 선택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뭐를 할지 말지 고민이 들 때면 무조건 ‘고’(GO)하라”고.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을 때 혼자 생각이 너무 많았다. 며칠 내내 밤을 새우고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더라. 무조건 도전을 해야 후회도 안 남는다.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저는 무조건 도전하고 부딪혀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윤정의 에스엔에스(SNS)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If not now, when?)라는 말이 적혀있는 이유라고 하겠다.
이윤정이 2일 경기 수원시 팔달문 인근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그의 다음 도전은 ‘우승’이다. 올 시즌 막판 좋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 2위에 올랐음에도, 코로나19로 리그가 조기 종료되며 우승컵에 도전조차 못 한 아쉬움이 지금도 진하게 남아있다. 그는 “지난 시즌보다는 다음 시즌에 더 잘하고 싶고, 오늘의 나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법”이라며 “지난 시즌에 2위였으니 더 잘해서 1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프로에서 보낼 두번째 시즌. 또 다른 도전에 나설 그가 이번에는 어디까지 질주할 수 있을까. “네 인생이야. 어디든 갈 수 있어. 그 핸들을 잡아, 네 것이야. 훔친 듯이 달려.”(영화 싱스트리트 중)
기사제공 한겨레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